
지난 몇년간 '책'의 진정성에 다시 눈을 뜨고 자기계발서 부터 문학, 인문학, 사회, 심리, 경제 등 다양한 책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리고 2024년에 느즈막히 만난 존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삶이라는 시간에 존재하는 나를 깊이 독백하게 만든 책이다. 아주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라 하기엔 그 사람이 존재한 시간에 대한 고요한 경이로움이 너무나 뜨겁게 느껴진 책! 나는 책을 모두 읽은 후에도 몇번이나 다시 스토너의 마지막 장들을 되읽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특별하게 애잔하다.
1965년 출간된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책이 출간된지 약 50년이 지난 후에야 미국도 아닌 유럽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책 속의 주인공 스토너의 인내심만큼이나 긴 세월을 지나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새김을 남긴 책..!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음 한켠이 너무 시리고도 따뜻한 오묘한 감정이 들어서 이 기분이 무엇인지 말로 다 표현 할 길이 없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고명환 작가의 책을 읽고 난 후 였다. 매일하는 독서는 이제 내 삶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 문학 장르는 좋아하는 작가나 몇몇 작품 이외에는 큰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평소 좋아하던 고명환 작가가 후배 개그맨 김영철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영철의 인생책 이라며 '스토너'를 언급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고 이야기한 문장 '넌 무엇을 기대했나?' 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 같은 것이 훅 들어왔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나는 스토너를 내 곁에 데려와 첫 장을 펼친지 이틀만에 푹빠져 무엇에 홀린듯 끝까지 읽고 말았다.
'스토너'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일대기, 아니 오히려 평범함의 경계를 넘어 조금은 불행해 보이기도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범함으로 일축될 수 있는 삶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인내로 지켜나가면서도 마음 깊이 일렁여 나오는 감정을 순간순간 진실로 소결한 고귀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가슴 깊은 곳에 큰 덩어리 하나가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왜 였을까.. 계속 생각했다. 답답하면서도 처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하게... 그가 삶에서 마주한 모든것을 진심으로 대하고 또 사랑하는 모습을 들여다 보면서 나는 어느 순간 묘한 공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외침 속에서 나의 내면을 발견하기도 했고, 심연에서 소리치는 감정이 투명하게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고 나서 이런 특별한 애잔함이 든 적은 오랜만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아.. 스토너!
악인과 선인의 기준은 무엇일까? 삶은 무엇인걸까?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는가? 넌 무엇을 기대한것인가? 스토너! ............. 스토너는 본능적으로 나를 깊이 또 깊이 사색하게 만든 책이다.
스토너의 삶에 나타나(?.. 아니면 스토너가 선택한) 그를 고뇌에 잠기게 하거나 곤경에 빠트린 그의 아내 이디스, 교수 로맥스, 학생 찰스 워커가 정말 못마땅했다. 더 답답했던 것은 그들의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행동에 대응하는 스토너의 방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오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이어가는 스토너의 모습이 외로운 영웅처럼 의연하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날, 스토너는 캐서린을 만나 운명적으로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스토너와 캐서린의 사랑은 사실 현실적인 시선으로 보면 명백한 '불륜'이지만, 그 사랑이 솔직히 참 아름다웠 보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아닌 하나의 존재가 되어 사랑이 가득한 순수한 영혼으로 만나고 사랑했던 그들의 순간들... 서로를 투명하게 바라보던 두 사람의 사랑의 일상을 넋놓고 바라보다 보니 그것이 무언가 불편한 상황이라는 것 조차 잠시 망각했었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불편한 사랑은 결국 예상한대로 슬픈 결말을 가져왔다.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도 세상의 일부인 거요. 그걸 알았어야 하는 건데.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조금 뒤로 물러나서 그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던 거요. 그래야 우리가....'
스토너와 캐서린의 거의 마지막 대화를 보면서 '그래도 두사람, 참 아름다웠잖아..'라고 중얼거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세월이 휙휙 흘러 스토너의 시간도 점점 저물어 갔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을 묘사한 장면은 몇번이나 더 읽었는지 모르겠다.
읽고 생각에 잠기고 또 다시 읽어 보기를 여러번....
세상의 호흡을 다 하는 순간을 홀로 맞이하며 '넌 무엇을 기대했나.'를 되뇌이는 스토너의 모습을 마음에 꾹꾹그려 넣는다.
바쁜세상! 우리는 무엇이든 빠르게 변화되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시작'과 '끝'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순리인데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자주 그 '무엇'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삶, 무엇을 기대할것인가..'
자꾸만 아프고 슬프고 혼란스러운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그럴 수록 나를 더 들여다보고 내면과 소통하며 뜨겁게 성찰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